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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냥

렌토상 2016. 12. 28. 03:00






 저를 흔드는 손길에도 그저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안던 소라는 나기사가 제 위에 엎어져서야 부스스 눈을 떴다. 이미 활짝 커텐을 쳐놓은 넓은 창문에서 환한 햇빛이 들어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밝은 빛이 눈에 들어오자 소라는 잠결에 겨우 떴던 눈을 찌푸리며 뒤척이듯 몸을 돌렸다. 소라쨩! 소라쨔앙! 어느새 나기사가 쪼르르 달려와 소라의 앞으로 와 침대위에 올라앉았다. 퍽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확 정신이 들었다. 자기가 잠들었던 그 사이에 무슨일이라도 생겼나, 하는 마음에 벌떡 자리에 일어나 앉은 소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건 덜 마른 머리카락을 묶고 목욕가운만 두른 채 거의 반 울상을 짓고 있는 나기사와 그 머리위에 솟아있는 고양이 귀였다. 아. 순간 맥이 빠졌다. 역시 잠에서 덜 깬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나기사는 꿈속의 나기사인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욕가운만 두른채 진짜 같은 고양이 귀를 달고 나타났을 리가 없었다. 소라는 그대로 기울어지듯 다시 침대에 누웠고, 아무래도 현실인것같은 나기사가 볼멘소리를 내며 소라의 볼을 쭉쭉 잡아 당길 때 까지 그러고 있었다.



 세면대 근처에 예쁜 병이 있어서, 호텔에서 원래 준비해놓은 향수인 줄 알고 마침 향도 달콤한 향이 나길래 온천에 들어갔다 나와 뿌리고 거울을 봤더니 이 상태라고 했다. 나기사가 잡아당긴 볼이 아직도 조금 얼얼하고 정신도 멀쩡해진걸보니 잠에서 깨어난 건 분명한데, 별 말같지도 않은 사실에 당황한건 나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색보다 조금 진한 노란색 귀가 이제 자기는 엄마나 파파를 보러 가지도 못한다면서 축 늘어트린 나기사의 어깨와 함께 내려앉았다. 덕분에 더 조그매진 나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라가 고개를 돌렸다. 저기 나기사. 응? 옷 안입으면 감기걸릴텐데. 그제서야 나기사가 허둥지둥 이불을 끌어당겨 제 몸을 가렸다.






* * *




 결국 배불러서 그 날 먹지 못하고 다음날로 미루고 있었던 점심으로 제공되는 뷔페의 딸기 케이크나 맨 윗층의 커다란 대중온천이나 번화가로의 기념품 쇼핑 등은 모조리 무산되고, 일단 원래대로 돌아올 때 까지 방 안에서만 있기로 했다. 나기사의 짐에서 나온 옷들은 죄다 스커트 투성이였고 소라의 후드티는 나기사가 입으면 도저히 밖에 입고나갈 모습이 아니었다. 유카타로 갈아입은 나기사는 비스듬히 눕듯 커다란 베개에 기대어 누워있는 소라의 옆에 털썩 앉아 오빠들에게도 특별히 사주겠다고 사 놓은 크리스마스 쿠키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형들 안 드려?”

 “나기 오늘 아무데도 못가게 됐으니까, 나기한테 주는 선물로 할거에요!”


 밤 늦게 라고는 해도 체크아웃을 해야하는 날이니 아쉽기는 한지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삐죽인 나기사가 하얀 초콜릿이 코팅 됀 눈사람 쿠키를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 목욕 후 발그레해진 볼이 금방 빵빵해졌다. 입안에 있는걸 열심히 우물거리며 나기사는 곧바로 다시 상자에 손을 뻗었고, 이번에는 트리모양의 쿠키를 소라에게로 내밀었다. 초록색 아이싱으로 코팅 되어있고 하얀색 장식에 분홍색 장식에. 어쨌든 모든것이 초콜릿으로 범벅이 되어 나기사가 더할나위 없이 좋아할만한 쿠키였다. 아냐, 나기사 먹어. 부러 선심쓰듯 하는 소라의 말에 나기사는 아직도 쿠키를 입안 한가득 우물거린채 고개를 끄덕였다. 웅, 거마어요.




 다행히도 나기사가 재밌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심령 프로그램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영하고 있었고, 나기사의 관심도 금방 침대 앞에 있는 커다란 벽걸이 TV로 쏠렸다. 소라도 편하게 누운채로 앉아있는 나기사의 허리 언저리를 끌어안으며 브라운관을 바라봤다. 한참 귀신의 모습을 리플레이 해주는 와중에 소라의 팔에 무언가가 스쳤다. 간지러운 느낌에 나기사의 머리카락 끝이 스친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또 다시 스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나기사가 어거지로 안겨주어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내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끌어안게 됀 고양이나 강아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소라는 고개를 돌렸다. 나기사의 등 뒤에서 노란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정작 나기사는 루돌프 모양의 쿠키를 한가득 우물거리며 TV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라는 눈을 깜빡였다. 꼬리는 나기사와는 별개의 생물인것마냥 평화롭게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요즘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법 했지만 이건 좀. 현실성이라곤 단 1%도 없는 이질감에 소라의 시선이 늘어트린 긴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가 나기사의 머리에서 꼿꼿하게 서있는 고양이 귀로 향했다. 여전히 나기사는 소라에게 꼭 붙어앉아 패널들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소라는 노란 꼬리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슬쩍 움켜쥐어보자 나기사가 놀란듯 허리를 똑바로 세우며 흠칫했다. 소,소라쨩?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기사가 들고있던 쿠키를 떨어트리며 소라를 돌아봤다. 아, 어, 미안. 나기사의 반응에 예상하지 못했는지 손을 놓으며 나기사를 올려다보자, 그 노란 고양이귀가 연신 쫑긋거리고 있었다. 본인도 얼떨떨한지 눈만 깜박이고있던 나기사가 다시 몸을 돌려 떨어트린 쿠키를 주워들고 시트를 살짝 잡아당겨 같이 흩어진 부스러기를 한곳으로 모았다. 청소해야겠네. 나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맡의 선반위에 있는 티슈로 손을 뻗어 가져가자, 소라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부스러기를 휴지로 감싸 모은 나기사의 시선이 소라를 따라 쭈욱 위로 올라갔다. 소라가 손을 들었다. 나기사의 시선이 점점 자신에게로 향했다. 소라의 손이 노란 귀를 톡 건들이자 이번에도 나기사가 흠칫하면서 귀도 함께 쫑긋거렸다. 한번 더 건들였다. 역시나 쫑긋거렸다. 소라쨩!! 뚱한 목소리를 내는 나기사를 뒤로하고 한번 더 건들였다. 쫑긋거렸다. 두번 쫑긋거렸다.    




 아아 정마알, 괴롭히지 말라구요! 얼른 몸을 돌리고 물러서 제 귀를 못 만지게 하려는듯, 고개를 숙이면서 두 손으로 귀를 접어누른 나기사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이거, 러니까!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다 말고 멈칫한 나기사가 잠시 고민하듯 인상을 쓰더니 항의하듯 덧붙였다. 발바닥 간지럽히는 기분 드니까요! 나기사다운 비유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