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히시카와 씨. 나와 주시겠어요? 장난스레 말은 해봤지만 등 뒤에서 옷자락을 쥐어잡은 손에 힘만 더 들어갈 뿐 이었다. 오늘따라 말을 걸어도 어물쩡 대답하면서 특히 더 졸졸 따라다니고, 계속 붙어있으려고만 하는게 어딘가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짐작가는게 있는것도 아니었다. 삐진것치고는 뚱한 표정도 짓지 않았고, 그렇다고 평소와 똑같은 것 치고는 눈이 마주쳐도 고개부터 돌렸다. 지금도 같이 가는 내내 소매만 꾹 잡은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니, 말을 걸자마자 등 뒤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어디 아픈거야? 등 뒤에 푹 파묻힌 고개가 절레절레 얼굴을 부볐다. 소라는 이제는 버릇이 된듯 고개를 조금 기울이다 다시 되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이번에는 잠시 멈칫하다 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몸을 슬쩍 돌려보자 따라서 한 발자국을 옆으로 옮겼다. 재빨리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번에는 나기사가 한박자 늦었지만, 그래봤자 시선을 아무리 밑으로 내려봐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건 똑같았다. 소라는 눈썹을 조금 늘어트리며 웃어버렸다. 그럼 갈까? 웃음끝에 덧붙인 말에 그제서야 나기사는 슬쩍 그의 등 뒤에서 빠져나왔다. 



 내렸던 손은 다시 소라의 소매를 잡았다. 그 작은 손을 내려다보다 여전히 웃는낯을 지우지 않으면서 소라는 나기사를 향해 허리를 조금 숙여보였다. 이제 숨는건 다 끝났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기사는 어정쩡하게 그를 올려다보던 고개를 또 돌려버리고 말았다. 길게 늘어트린 밝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뺨이 빨갛다. 이름을 불러봤더니 아예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다. 몇번을 그러다 소라는 결국 푹 꺼져 커튼처럼 내려와있는 그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넘기면서 나기사의 두 볼을 조심스레 손으로 감쌌다. 닿은 뺨이 물들었던 색 만큼이나 따뜻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천천히 들어올렸다. 자신을 보게 했다. 나기사. 이름을 불렀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도 나기사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볼 때 마다, 제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그랬다. 가슴 근처에서 소리죽여 뛰어야 할 심장이 머리 끝 까지 올라온 기분이었다. 쿵쿵 울리는 소리가 제 귓가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한밤중에 그저 가로등 몇개만 켜져있는 지금 이 거리에서 라면 그에게 들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주체할 수 없었다. 마음같아선 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도망이라도 가버리고 싶은데 정말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멍하게 올려다보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던 소라는 웃었다. 이제 가자. 자연스럽게 볼을 감쌌던 손이 내려가고 나기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걸음을 뗀 커다란 보폭을 종종걸음이 조심스레 뒤따랐다. 밤이 짙은 길목에선 두사람분의 구두굽이 부딪히는 소리만 엇박자로 들려올 뿐 이었다. 여전히 그 소매를 잡은 작은손이 느리게 아래로 내려와 그의 손가락 하나를 꼭 잡았다. 이윽고 구부렸었던 손가락을 펴 네번째, 세번째, 두번째. 그의 손가락들이 겨우 그 하얀손 안에 다 들어왔을때, 방향을 틀어 소라는 나기사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한 손안에 다 들어오고도 남았다. 따뜻했다. 






 "저기, 소라선배" 


 여태껏 내리깐 눈으로 땅만 바라보던 시선이 들어올려졌다. 소라는 그에 따라 늘 그랬던것처럼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짧게 대답했다. 응.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기사는 말을 삼켰다. 삼키고, 또 삼켜넘기고. 그 짧은 시간을 삼킨 후에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 저(私)는 말이죠" 


 평소와 똑같았지만 어딘가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나기사는 부쩍 늦춰진 두사람의 걸음걸이 만큼이나 천천히 말을 꺼냈다. 소라 선배가 그냥 좋은게 아니에요. 남자로서 좋아요. 여전히 앞만 바라보던 시선은 목소리를 내면서 점점 아래를 바라보았다. 소라선배가 저만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손 안에서 거의 옆면만을 잡고있던 나기사의 손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들어갔다. 제 옆에만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걸음은 이미 멈춰있었다. 보폭차이로 아주 조금 더 앞장서버린 소라는 우뚝 멈춰서있는 나기사를 향해 뒤를 돌았다. 이제는 제대로 올려다보고 있다.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잡고있는 그의 손을 꼭 쥐고있는채로 나기사는 그에게 물었다. 


 "선배는 저를 어떻게 좋아하고 있어요?"




 짧은 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5월의 중순을 향해가는 늦은 봄의 바람이었다. 침묵. 물음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삼켜넘길 시간만 가득했다. 미쳤지 미쳤어.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나기사는 꾹 다문 입 안으로 온갖 말들을 늘어놓았다. 지금 이게 무슨말이래. 어떻게 좋아하는건 또 뭐고. 아, 그냥 생각이 어떻게 돼버렸나보다. 또 새벽 감성을 타버렸다. 그런거치고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아 모르겠다. 소라선배가 저를 여자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자체로도 좋은데. 굳이 여자친구가 아닌 한 사람으로만 바라봐줘도 좋은데. 다 좋은데. 그냥 너무 좋을 뿐 인데. 소라가 대답했다. 


 "나는, 그냥 나기사라는 것 자체만으로 좋아"


 늘 듣고싶어하는 말만 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좋아했다. 그 모습이 좋았다. 어떤 모습이어도, 그 라면 다 좋았다. 나기사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흘러내렸던 머리카락을 귓가 뒤로 넘겼다. 


 "그럼ㅡ"



 지금 키스해주세요



 "그걸로 됐어요"



 그러니까 굳이 욕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자연스레 잡았던 손을 놓고, 나기사는 두세걸음을 먼저 앞장선 다음 뒤를 돌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일 아침에 같이 가요! 평소처럼 그렇게 활짝 웃었다. 기다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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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렌토상 :